군산 옥산저수지 구불길
세인트 헬레나
군산 옥산저수지를 추석 연휴에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기로 했다. ‘정말 좋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가보지 않았던 곳이다.
우리 마을 저수지를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갔던 추억 때문에 기대와 상상보다 더 흥분했다.
어린 시절 소나무 동산에서 놀다 지루해지면, 높게 경사진 저수지 둑에 올라가 바람을 안고 달리며 놀았다. 저수지 가득 찬 물이 바람에 움직이며 만들어낸 철썩거림과 은빛 물결로 반짝이는 넓은 저수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늘 좋았다. 모래톱이 만들어진 가장자리에서 우렁이와 민물새우를 잡아 신발에 담고, 납작한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몇 번 만들 수 있는지 경쟁하고. 퐁당퐁당 돌이 던져 물결이 퍼져나가는 모양을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지켜보던 아이들, 경사진 저수지 둑을 달려 내려가다 뒹굴어 빠졌던 보 등....... 가득 밀려오는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옥산저수지에 도착했다.
옥산저수지는 생각과 달리 제방이 낮았다. 둑에서 바라본 저수지가 작아 보여 약간 실망스러웠다. 갈대밭을 지나 많은 사람이 가는 곳으로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변 구불길로 들어서자 초록 나뭇잎이 금세 모든 생각을 놓게 했다. 숲속에 들어선 사람들은 꽃들의 웃음소리와 거미의 긴 기다림과 무리를 찾아 바쁜 걸음으로 가는 개미의 사연을 아는 듯 금방 숲의 일부가 되었다. 숲속으로 깊이 들어서자 나무들이 푸른 말을 걸어왔고, 나무와 푸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웃음 가득하다. 마치 행복한 나라에 온 것 같다. 좀 더 걸어가자 대나무 숲이 펼쳐졌다.
바람이 불지 않아 대나무 잎의 낮은 속삭임은 들리지 않았지만, 대나무 잎의 푸른 눈부심이 마구마구 쏟아져 마음과 몸속으로 가득 들어와 초록빛이 되었다.
왜 이곳에 대나무가 이리 많은지 의문을 품어 볼 수 없는 눈부신 초록 숲이 계속 이어졌다.
오랜만에 밟아 보는 흙길이 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걷다 보니 사람들이 드문드문해지기 시작했다.
옥산저수지 구불길은 바다의 만처럼 구불구불 숨은 길이 많아서 작다는 처음 생각이 사라졌다. 도심 산길에서 보지 못한 수변 식물과 은빛 물속에서 한가롭게 헤엄치는 새들의 모습은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습지의 눅눅함과 대지의 열기를 먹은 수변 나무들은 나무기둥까지 이끼를 담고 있어 열대우림 속 같았다. 이 모든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싶어 화가의 눈이 되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그루의 나무도 눈에 담아 그릴 수 없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어떻게 자연을 그릴 수 있었을까?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온종일 그림을 그리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 옆에서 앉아 그림 속에 뿌리내린 나무가 보고 싶어졌다. 반짝이는 나뭇잎과 빛이 들어오면서 만들어지는 자연 속에 자신의 감정까지 그리고 싶어서 고뇌하는 내 상상 속의 빈센트 반 고흐를 방해할 수 없어 뒷모습을 따라가듯 계속 걸었다.
길고 구불구불한 옥산저수지는 샛길이 있거나 지름길이 없었다. 옥산 저수지를 두 시간 정도 걷고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절반 이상 와 버려 되돌아간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완주하기로 했다. 눈으로 들어오는 풍경과 달리 발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는데,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길을 잃고 헤맨 것 아닐까? 하는 조바심까지 생겼다. 물을 가로질려 가면 삼분이면 상대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을 건너는 배가 없으니 다시 부지런히 걷다가 제법 많은 뽕나무를 만났다.
뽕나무를 보니, 옛날 저수지 주변에 마을 있었으며, 대나무를 심어 바구니를 만들어 사용하고, 뽕나무는 누에를 치기 위해서 심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주하여 다른 곳에서 살고 있지만, 달콤한 오디 맛을 봄이면 그리워할 것이다. 그들의 시간 속에 공존한 오디를 봄날 따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만으로 입안이 달콤해졌다.
세 시간이 넘어지자 주변 나무들의 아름다움보다 빨리 이 숲길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욕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빠른 발걸음으로 걷다가도 보지 못한 나무와 꽃을 만나면 경이로움에 빠져들어 냄새를 맡아보고 만져보기 위해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다시 사람의 즐거운 웅성거림과 발걸음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주변 마을과 숲에서 벗어난 먼 곳의 경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군산 옥산저수지 구불길 네 시간을 완주했다.
가볍게 산책하듯이 시작된 옥산저수지 구불길, 두 시간이 지나자 알지 못한 미지의 길을 걸어 종착점에 간다는 것은 두렵고 불안한 요소들이 가득했다. 아마 인생 또한 이러할 것이다. 걷기가 가르쳐주는 것은 단순한 건강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가까이 보는 힘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가을! 어느 낯선 역에 앉아 있고 싶은 날, 가까운 옥산 저수지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옥산 저수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품질 좋은 우리나라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간척사업을 하고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다.
1939년 저수지가 조성되면서 마을이 물에 잠겼고, 1963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군산 시민 식수원으로 사용하다가 2009년 사람의 출입이 허용되었다.
옥산저수지 구불길은 제주 올레길, 강릉 바우길, 지리산 둘레길과 더불어 국내 4대 명품 길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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