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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길

세인트 헬레나 2023. 11. 15. 09:21

심심함을 춤추는 가을

동네 앞 하천과 뒷산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안개가 하얗게 방안까지 들어올 기세다. 따듯한 방바닥 앉아 무 생채에 고소한 참기름과 달걀부침을 넣어 엄마가 비벼준 밥을 먹고 있는데, 윤님이가 늘 열려 있는 대문을 들어서며 학교 가자고 부른다. “잠깐 기다려, 먹던 수저를 놓고, 거울을 한번 쳐다보고, 학교 갔다 올 게 엄마.” 하고 달려나간다.

짧은 치마와 하얀 스타킹 사이로 가을 찬바람이 들어온다. “! 추워을 외치며 잔뜩 웅크린 채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을 걸으면서 꽃을 따서 꽃잎을 날리거나 머리에 꽂기도 하고 친구 얼굴을 간지럽히며 걷다 보니, 숨 가쁘게 새어 나온 하얀 입김이 거두어 가듯 서서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빨간, 노란 단풍이 산 밑으로 내려오고, 하얀 들국화가 하늘거리고, 변함없이 마을을 돌아서 시냇물은 흘러간다. 달리다 걷기를 반복하며, 늘 봐왔던 어제의 것이 오늘 너무 신기하듯 산과 들을 쳐다보며 까르륵 웃고, 뛰어나온 개구리가 신기해 멈추어 서서 웅성거리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긴 길을 걸어 신작로(큰길)에 도착하면 먼저 앞길을 가던 동네 언니, 오빠들이 플라타너스 사이로 희뿌연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버스를 타고 도시에 있는 학교에 간다. 황색 구름 먼지가 남아 있는 자갈길 지나, 논두렁 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아침 이슬이 하얀 스타킹에 한 줄 두 줄 선을 그리며 스며들고, 해가 조금 가까이 얼굴을 비추고 발이 아파질 때 학교에 도착한다.

학교 공부가 지루해지고 풍금 소리에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가 산을 넘어갈 무렵 청소 당번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홀로 산모퉁이를 다다르자 정숙이가 들려준 달걀귀신 이야기가 생각나고 무서움이 몰려온다. 작은 하천이 거대하게 커지면서 짙은 녹색 물이 시커먼 강물로 변하고, 둥근 돌이 된 커다란 달걀이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우거진 산속에서 날카로운 긴 새소리가 ---삑 삣-들려오고, 총각 귀신, 처녀 귀신이 뛰어나온다는 음습한 곳, 묘지가 보이자 정신이 혼미해지고 긴장감에 사로잡혀 달리기 시작한다. 거센 솔바람이 나을 들어 올려 둥둥 떠가듯이 달려보지만, 달걀귀신은 작은 보를 거슬러 올라 나보다 빨리 앞질러 달려가고 있다. 바람에 살랑거리던 하천 나무가 미친 듯이 흔들거리며 하천을 건너온다. 거칠게 숨이 차고, 더는 달릴 수 없을 때 저 멀리 우리 동네가 보이고, 밭을 매고 있는 엄마의 하얀 저고리가 보인다.

엄마부르는 내 목소리가 메아리쳐, 엄마의 까만 머리카락이 나을 향해 돌아본다. 몸의 모든 힘이 빠지면서 축 처진 발걸음을 옮겨 하천을 내려다보니 너무 평온한 수양버들의 긴 그림자 사이로 잔잔한 물결이 반짝이고, 졸졸 통통거리며 물이 흘러간다. 무섭게 나와 달리기하던 달걀귀신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수건으로 툭툭 먼지를 털면서 학교 잘 갔다 왔냐, 어서 집에 가라.” 하면서 밭 두 덩이에 앉은 내 손을 잡는 엄마에게 떼를 쓰듯이 그만 집에 가자고 해 보지만, 두 고랑 밭을 더 매야 한다고 한다. 알 수 없이 잔뜩 심술이 난 나는 신발을 질질 끌어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터벅터벅 집으로 향한다.

55년 전 10km를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옛길은 아직도 그 시절을 기억한 채 간간이 지나가는 한산한 찻길이 되었고, 신작로는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8차선 도로가 되었다.

내 학교 길은 꽃과 구름과 새, 나비와 잠자리, 파란 하늘과 하얀 눈, 바람과 뜨거운 태양, 흐르는 시냇물과 함께였다. 봄부터 여름까지 초록빛으로, 가을엔 노란빛으로 물들었고, 겨울엔 거친 솔바람과 하얀 눈이 내리는 깊은 심심함이 있는 사색의 시간이었다.

오늘날 도심의 학교길은 문명의 이기로 만들어진 자동차길 위에 놓여 비좁기만 하다. 편리함을 위해 만든 자동차가 목숨을 위협하며, 10분 내 짧은 거리에 있는 학교길을 안심할 수 없어 많은 부모가 차를 태워 등·하교를 같이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가을날을 한껏 느끼고 사색하면서 지루할 만큼 먼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없는 환경이 안타깝다. 학교 길을 대신하여 단 하루라도 가까운 들과 산으로 나가 지칠 때까지 가을 노래하고 시를 읊고, 아름다운 가을을 느껴보자.

훗날 이러한 심심한 일상이 발터 베야민이 말하는 "깊은 심심함이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잠이 육체적 이완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이라고 한다. 걸으면서 심심해하고 이러한 심심함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시간이 흐른 뒤 걷는 것 자체가 심심함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러한 인식은 새로운 움직임을 고안하여 달리고, 뜀박질하다가 다른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다.가을 하늘아래서 나만의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참고서적 : 한병철 피로 사회

                                                                    송천마을신문  11월호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