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1, 2를 읽고
백년의 고독 1.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출: 민음사
세인트 헬레나
환상의 모험 같은 마술들이 아픈 상처 안고 깊숙이 고독 속에 잠들어 버린 마을 마꼰도.
전설이 되어 양피지문서로 내려오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 가문은 누구도 죽지 않는 태초의 마을 마꼰도을 건설한다. 그러나 황금을 찾아 끊임없이 밀려 온 유럽 자본주의의 탐욕으로 마꼰도 마을은 슬프고 고독하다.
마술적신화로 탄생된 백년의 고독은 6대 부엔디아 가족의 역사인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이다. 그렇다고 역사소설처럼 줄거리를 찾아 읽는 책은 아니다.
이 책속에 나타난 마술적, 은유적, 환상적, 신화적 의미가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지 상징하는 바를 찾아 읽어야 한다.
원시적인 수렵과 농경사회와 독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던 마꼰도 마을은 급격하게 들어온 유럽 방탕한 문화와 질병으로 오염되고 파괴 되어 간다. 유럽의 신민지화는 정치적 혼란을 불려 보수와 자유라는 내분 일어나고 끝없는 전쟁 속으로 들어가는 콜롬비아와 목축과 황금을 찾아 들어오는 유럽 자본에 의해 점점 잠식되어 가는 라틴 아메리카의 슬픈 현실을 저자 마르케스는 환상이라는 마술적 기법으로 백년의 고독을 썼다. 읽고 나면 마술이라는 손기술로 탄생된 책을 마법에 걸려버린 시간 속에 읽는 것 같다.
이 책은 사실적 역사도, 죽음도 마술이 되어버린다. 굳이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라는 찬사가 없어도 마르케스의 글들은 라틴아메리카의 특징과 가장 어울리며 매혹적이다.
황금을 캐내는 데 유용하리라 생각하고, 집시란 정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당나귀 한 마리와 염소 한 쌍으로 무엇이든지 끌어들이는 쇠붙이 두 개와 맞바꾼다.
다시 돌아온 집시들이 가져온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는 얼음이라고 하고 펄펄 끓는 어름을 5레알 주고 만져보고, 신기해하고 두려워하는 마꼰도 마을에 더 많은 공산품들 넘쳐 난다. 비엔나가구 보헤미아 크리스틸 제품, 서인도회사 홈세트, 네덜란드 식탁보, 램프와 촛대, 꽃병, 자동피아노, 선풍기 등이 들어오고, 석 달마다 1파운드씩 커피 값이 오르지만 원주민들이 신발과 옷을 사기 위한 돈은 부족하고, 단맛이 떨어지는 설탕과 땔감을 사야하고 복권을 만들 종이와 물감 값으로 지불한다. 해안을 따라 들어온 서구 문명이 급속하게 들어와 라틴아메리카의 문명을 바꿔 놓았는지 알 수 있다.
“아내가 정조 바지를 꿰입고 있던 순간 침실로 들어 왔다. 그것 벗어,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당신 책임이에요, 부엔디아는 방 흙더미에 창을 꽂았다.”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탄생할거라는 두려움을 가직한 채 자본주의는 문명이라 이름으로 콜롬비아는 빗장을 열었다.
자본주의 탐욕은 토끼들의 번식률처럼 마당이 파랗게 물든 토끼들로 뒤덮여 버리고 ,암소는 두 달 후 송아지 세쌍둥이를 낳고 넘쳐나는 마구간과 돼지우리를 증축할 시간도 모자랄 지경이 된다.(백인들이 들어와 목축을 위해 밀림을 불태우고 농장을 만든다) 바나나와 나비, 곤충의 표본까지 유럽으로 정신없이 가져가고 보내진다.
이러한 약탈로 거대한 늪과 여자 몸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지닌 고래들이 살아가는 곳에 건설된 마꼰도 마을의 여자들 레베카는 흙맛을 그리워하다 죽고, 미녀 레메디오스 죽음의 냄새로 남자들을 죽이다 아무런 고뇌도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채 공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이 죽음은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 가져온 질병으로 면역력 없이 죽어간 원주민들의 죽음을 시사하고 것 같다.
유렵의 식민지화 야욕은 콜롬비아의 정세를 자유파와 보수파로 나눠지게 하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없는 이념들은 부엔디아 가족에게 그 영향이 미치기 시작한다.
빨간 투표용지가 열장만 남겨두고 없애버린 빨간 투표용지 수만큼 파란투표용지로 채워지면서 보수파들을 암살하는 행위가 왜 애국인지 모른 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는 대령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서른두 차례 무력 봉기를 일으켰고, 모두 실패했다. 열네 번의 암살기도와 일흔세 번의 매복 공격과 한 번의 총살형으로부터 살아났다.
붉은 완장을 찬 아르까디오는 마꼰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잔혹한 통치자로 변한다.
자유파 패배소식에 싸우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한 아르까디오(호세 아르까디오의 아들) 는 체포되어 죽음의 형식을 갖춰 죽는다는 게 우스꽝스럽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였기 때문에 사형이 선고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향수였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총살형을 중단시키려다 호세 아르까디오도 죽는다. 다시 자유파가 승리를 거두었다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고 누구에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전쟁 계속되고 아우놀리아노 대령이 작은 황금물고기을 만들다 늙어 죽고 싶어 하는 마을은 점점 멀어져 간다.
거대 미국 자본은 바나나 농장을 만들고, 노무자로 살아가는 원주민의 열악한 환경은 파업을 불려와 삼천 명이 기관총으로 죽으나 “여긴 죽은 사람이 없는데요, 대령이 살아 있는 시절에도 여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끊임없이 양피지를 읽고 현자의 돌을 만들어 마을 다시 일으키고 싶어 하지만, 마을 전체가 잠에 빠져 들고,4년 22개월 내린 비속에 잠기고, 벌레들로 들끓고 만다.
메메가 클라비코드 악기(바로크 시대의 조용한 실내악기)을 들고 유럽으로 공부하고 돌아와 남편 바빌로니아(바나나 농장 인부)와 결혼 아우렐리아노을 낳았다. : 외국 자본을 끌어 들인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함. 아우렐리아노는 아마란따 우르슬라(이모)와 관계하여 돼지꼬리(아우렐리아노, 로드)을 낳는다. 이러한 기형적 탄생은 거대자본 유럽이나 미국과 야합한 관계를 표현한다.
마꼰도 마을의 환상이 아우렐리아노가 멜키아데스의 양피지를 상상하게 하는 커다란 종이 상자를 안고 글을 쓰는 일을 밖에 하지 않았더라도 마꼰도 마을은 고독한 현실에 존재한다.
★고작 슬픈 열대(레비 스트로스, 십년이 넘게 읽는 책중에 하나. ㅎㅎㅎㅎ)을 통해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지역을 문명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목축을 위해 불을 지르고 땅을 차지하는 자본의 탐욕을 읽은 것 외 처음으로 접한 라틴 아메리카의 소설 백년의 고독을 읽었다.
경주를 처음 여행할 때 신화가 역사가 되어 나타나는 현실 속에서 역사가 신화이구나! 을 깨달았던 그때와 같이 이 소설 또한 마술과 신화가 역사로 나타난다.
마술적 과장이 아니더라도 유럽의 침략은 원주민들에겐 마법 이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아이스께끼의 달콤한 맛을 보기 위해 집안을 구석구석을 뒤져 쇠 조각 몇 개와 바꾼 아이스크림. 4학년 때 처음 전기불이 들어와 그 황홀한 불빛으로 방안 이쪽저쪽 3평정도 되는 방을 춤을 추며 환호하던 시간의 흐름은 아주 긴 시간동안 일어나 현재에 이르렀지만 원주민들이 받아들인 유럽문명은 마술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대를 이어지는 같은 이름, 원주민 소녀들의 죽음은 면역체가 없어 퍼지는 유럽인이 가져온 질병, 정부(유럽자본)의 관계에 미친 듯이 새끼를 낳는 소, 수없이 날아다니는 나비는 나비채집에 열중인 유럽인들, 집을 가득채운 벌레들, 황금과 돈을 찾아 들어오는 유럽인들…….
책속에 나타난 전쟁과 죽음 또한 마르케스처럼 리얼하게 표현하는 작가를 만나기 힘들 것이다.
마치 마술과 은유의 표현인 것 같지만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을 역사적 현실로 만드는 구성으로 더욱 빛나게 한다.
그의 놀라운 표현들은 몇 번을 읽게 만들고, 잊고 싶지 않는 글들이다. 이렇게 빛나는 글을 쓰는 작가들을 만나다는 것 또한 독자로서 행복한 일이며 읽고 나서 서가에 꽂힌 책을 바라볼 때 마다 다시 펼쳐 보게 될 것이다. 콜롬비아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고 가을의 끝에서 마꼰도 마을에 잠든다.
침보라소 (에콰도르)최후의 얼음장수. 그는 해발 4700m 지점에서 곡괭이 하나로 얼음을 캔다.
그리고 이 얼음을 단열재 역할을 하는 지푸라기로 싸매 나귀에 실어, 인근 시장에 내다판다.
침보라소 얼음은 잘 녹지 않고, 맛 또한 좋아 인기가 많다. 그러나 얼음 캐는 일이 워낙에
고돼, 침보라소에는 이제 단 한 명의 얼음장수만 남아있는 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