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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비겨 가지 않는다

세인트 헬레나 2025. 2. 12. 09:49

줄리언 반스 장편소설

기대와 흥분 속에 대학 첫 강의 주제는 문화와 문명이다.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는 교육의 최고 형태는 협력이라고 말하며, 중세 기적과 순교의 상징황금 전설성 우르술라를 강의한다.

핀치 교수의 강의 : 서기 400년 우르술라 브리튼 공주는 기독교 왕 노투스의 딸이다. 그녀는 지혜롭고 의무에 충실하고 믿음이 독실하여 덕이 높았다. 앵글리아 왕의 아들 에테리우스는 우르술라를 사랑하여 청혼한다. 그러나 기독교 왕 노투스는 막강한 앵글족 우상 숭배자를 거절할 수 없어 시간이 걸리는 조건을 붙였다. 우르술라가 3년이 걸리는 로마순례 마친 후에 에테리우스가 진실한 신앙과 세례를 받아야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우르술라는 처녀 만천 명 비토레 카르파초 그림 연작 묘사/ 성 우르술라을 동행하고 순례를 떠난다. 우르술라의 순례는 순교의 거룩한 관과 종려나무 가지를 얻게 될 거라는 소문으로 가는 곳마다 사람을 끌어들이게 된다. 약혼 3년째 주의 천사가 에테리우스에게 나타나 쾰른에서 우르술라를 만나라는 지침을 준다. 로마의 지휘관은 기독교가 더 펴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훈족 군대를 이용해 순례자 만천 명 이상을 학살한다.

젊은 여성에게 강요된 행동과 로맨틱한 사랑 또는 광적인 집착 또는 강요된 순결의 순간에---

이러한 학살을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는 경찰관을 이용한 자살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이전 세대의 진리를 이용하여 생명력을 유지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버린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라는 물음? 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간에 속지 말고 역사가 지성이 선형적(단순한 관점)이라고 상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핀치 교수의 강의 : “일부일처제의 어떤 점에 반대하시나요?” 린다의 물음이다.

대부분이 살고 싶어 하는 방식, 대부분이 꿈꾸는 것을 조심하라는 엘리자베스 핀치의 대답이다.

강요된 일부일처제란 강요된 행복과 마찬가지이며, 그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해 볼일 수 있지만 한 형태로 만들어지면 결혼생활 중 강박과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기 쉽고 편집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열정과 편집광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핀치 교수의 강의 : 제프의 질문 단종 재배에 왜 반감이 있는지요? 성공적인 중앙 계획의 능률표시가 분명하다고 제프가 질문한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던 시대 자족적이었지만 독립적이지 않았고, 겨울을 대비해 먹을 걸 저장해야 했지만, 철도가 깔리고 주된 기능은 식량을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생산하던 것을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농촌은 점점 단종 재배를 하게 되었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반대로 곡식은 다른 지역으로 보내면 값이 더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더는 자족적이지 않는다.

핀치 교수의 강의 : 틴토레토-게오르기우스와 용 : 세르비오스의 성 호수에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익룡에게 왕의 외동딸을 제물로 바치게 되었다. 악용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게오르기우스는 자신이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한다. 용이 입을 벌린 순간 긴 창으로 용의 입을 찔러 제압하여 외동딸을 구한다. 그리스도교로 믿고 있던 게오르기우스는 이교도 왕에게 체포당한 후 잔인하게 고문을 당하고 배교를 강요받는다.

그림 해설 : 용을 길들이는 게 곧 이 땅 전체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은 매혹적인 선전물이고 기독 종교가 성공하는 비결의 한 가지는 늘 최고의 영화제작자를 공용한 것이다. 역사는 길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나아가 역사는 무기력하게 혼수상태로 누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활동적이고 들끓고 가끔 화산처럼 폭발한다는 것이다. 실패가 성공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깨끗한 패배자보다 지고 나서 뒤끝이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한다.

배교자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 361~363년까지 로마 황제

노예 마르도니우스에게 고전문학과 철학을 교육받았으며, 구원을 약속한 그리스도교를 혐오하여 반그리스도교 정책을 펼치나 실패로 돌아간다. 율리아누스는 믿음의 자유와 모든 종교를 공인하고 그리스도교를 견제한다.

율리아누스와 종교 정책:

  •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화를 정면에서 거스르는 정책을 폄
  • 밀라노 칙령- 모든 종교를 공인하는 칙령을 내림
  • 교회재산에 세금을 매김
  • 유대교와 예루살렘 성전 복구 지원 다른 종교의 제례를 부활시키고자 함
  • 그리스인이 많은 도시 기존 우대를 줄이는 방식을 택함
  • 전문 성직자와 교리를 갖추도록 로마종교 재조직

닐의 에세이

율리아누스는 왜? ‘배교자로 알려지게 되었는가?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일부 역사는 승리의 편에서 쓴 글로 전해질 것이다. 율리아누스는 어릴 때 정치적 숙청에 휘말려 고아가 되었으며, 오랜 세월 궁정에서 멀리 떨어져 학생으로 살았다. 제국을 혼자 다스리기 힘들어진 사촌 형 콘스탄티누스 2세는 율리아누스의 형 갈루스을 궁정으로 소환 동방을 다스리는 일을 맡겼으나 3년 뒤 부패 협의로 처형한다. 그다음 율리아누스도 밀라노로 소환되었기에 자신도 제거될 것이라고 반쯤 예상한다. 그러나 콘스탄티우스 황제 두 번째 부인 에비세비아가 보호자가 되어 주었고, 철학책, 역사책, 시집을 주며 공부를 계속하도록 격려하였으며, 학자풍의 소년에게 큰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는 361년 열병으로 사망하고 우연히 율리아누스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율리아누스는 금욕적인 사람이며, 검소, 겸손, 순결 학구열을 보여 줬다. 효율적이었고, 부패하지 않았으며 근면하고 공정했다. 사법, 조세제도를 개선하고 안전한 제국을 만들었다. 기독교인으로 태어나 세례를 받았고 교회 의식 속에 성장했다. 그러나 율리아누스는 그리스 문화와 정신과 철학을 숭배하였고, 데메터르(그리스신화 대지의 여신) 제사에 참여한다. 율리아누스는 공적으로 기독교인이었다. 율리아누스가 기독교인이 아니고 이교도였다면 지휘관인 그을 따르는 자는 없었을 것이고, 죽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기독교는 우상을 숭배하는 농민보다 배교자를 훨씬 미워하기 때문이다.

율리아누스는 다작의 저술가(구술가)로 편지, 웅변, 송덕문, 풍자문, 경구, 단상 등이 전해진다. 글의 핵심은갈릴리인들에게 반대한다. 이는 기독교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이다.

창건 신화  에덴동산 이야기는 율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갈릴리인들이 꾸며놓은 이야기는 사실 사람들이 사악한 마음으로 지어낸 허구에 불과하다고 내가 확신하는 이유는 모든 인류에게 제시하는 것이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성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사람들의 영혼 가운데 우화를 사랑하는 유치하고 어리석은 것이 이용하여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믿도록 유도하고 있다.

전적으로 황당무계하며, 아담과 이브에게 완전히 불공정하다. 하느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이 엄지로 저울을 누르고 있는 셈이다. 십계명으로 보자면 일신교와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 외 독특한 것이 전혀 없다. 하느님이 질투한다는 관념은 하느님에 대한 끔찍한 중상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우리를 경멸하고 아버지의 죄로 자식을 벌하는 징벌적인 통제 광신을 숭배하겠는가?” 율리아누스는 이 모든 것이 유치하고 미성숙하다고 본다. 불완전한 개념으로 신성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은 신을 극도로 중상하는 것이다.

율리아누스는 예수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설교한 것을 현실성 있게 생각해 보라 말한다.

모든 사람이 그 말에 순종한다면 파는 사람만 있지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가르침을 수행하면 어떤 도시도 어떤 나라도 단 한 가족도 지탱이 되지 않으며 모든 걸 팔았다면 어떤 집이나 가족도 가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시의 모든 것을 동시에 팔려고 내놓고 있다면 거래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인을 비롯한 이방인의 종교는 아주 오래되고 깊은 문명에서 나왔다. 이와 비교하여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무엇을 내놓을 수 있는가?

예수의 이름이 알려진 지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는 평생들을 가치 있는 일을 이룩하지 못했다. 눈먼 자를 치료하고 마귀 들린 자에게서 마귀를 쫓아낸 일을 대단한 업적으로 친다면 몰라도

율리아누스는 유대교- 기독교가 종교를 가진 문명이 아니라 자신을 뒷받침할 문명이 거의 없는 억압될 종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대단한 비판서가 361년경에 쓰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패배한 지도자 율리아누스가 만일 30년 더 통치하여 기독교를 몰아내고 그리스와 로마의 다신교를 강화했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러한 질문입니다.매우 흥미로운 율리아누스에 관한 닐의 에세이입니다. 여기서 책 읽는 독자가 주의 기울일 점은 다른 견해의 사고적 상상을 해 보는 것입니다. 토착민에게 믿음을 가용하지 않았을 것이고/종교전쟁이 없었다면/헬레니즘을 믿는 인생의 기쁨/디즈니화된 천국이 아니라 지상의 짧은 시간 동안에 누리는 것이라는 믿음/기독교 사제들과 헬레니즘이 발전하여 이교도와 드루이드교 사제와 숟가락을 구부리는 마술사와 나무를 숭배한 자가 동등하게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는. 역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보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엘자베이스 핀치는 율리아누스를 강의합니다. 이교 신앙과 헬레니즘의 참사, 일신교의 승리, 기독교의 지배와 부패가 유럽 정신의 폐쇄를 낳았으며, 율리아누스는 교황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자였다는.엘리자베스의 강의는 기사화되어 타임스미친 여교수 로마 황제가 우리 성생활을 망쳤다고 주장으로 발행되고 추문으로 변질하였고 그녀의 말처럼 사람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는 쪽을 택하고대학의 요청으로 퇴직합니다.

스토아학파 대표적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일을 하면 성격상 자유롭고 방해가 없고 막힘이 없으며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을 하면 약해지고 속박되고 방해받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해야만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겠다고 합니다. 스토아학파적 삶을 강조하고, 세상 안에 덜 존재했던 엘리자베스 핀치의 열정적인 강의는 읽는 순간순간 깨우침을 가져다줍니다.

율리아누스는 긴 역사 속에 죽어서 살아 있는 배교자가 됩니다. 신학자와 역사학자와 문학가들이 율리아누스의 삶과 생각을 개작하여 많은 글을 쓴 글처럼 닐 또한 제출하지 못한 에세이를 쓰면서 엘리자베스 핀치를 알고자 합니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한 엘리자베스 핀치는 정말 내가 봤던 그녀가 맞는지? 닐은 자신이 본 모습이 자신이 보고 싶어 했던 엘리자베스 핀치일 뿐이며, 그녀는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누구도 그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은 대학생이 되어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받는 느낌입니다.

상당히 읽기 어려운 책이라서, 책 읽기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