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를로 진즈부르그- 김정하·유제분 옮김
이 책은 거대한 시대의 역사에 휩쓸린 한 개인의 삶을 사회적 관점으로(미시사) 들여다보는 역사서이다. 평범하고, 나약한 개인이 허물 수 없는 종교적 권위와 신앙을 비판하고, 자신의 종교적 우주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충돌한다. 그 시대의 민중문화와 정치, 사회 현상이 한 개인의 밀접한 삶과 얽히면서, 종교와 사회에 어떻게 침해당하고 압력을 받았는지 1580년의 종교재판 과정을 통해 세밀하게 역사적 사실을 허구가 아닌 실증으로 독자와 만난다.
그리스도적 신앙과 사상이 삶의 주체가 되었던 이탈리아의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는 목수, 벌목꾼, 석공 등 잡다한 일을 하는 가난한 농부였다. 교회와 사제들은 복종과 침묵을 강요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억압한다
메노키오는 교회의 세속성과 종교의 부당함과 성경의 비합리성을 자신의 논리로 전개한다.
“하느님은 무엇이라고 상상합니까?
하나님은 단지 은은한 숨결일 뿐이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모든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고, 그리고 우리는 작은 신들입니다.
하늘, 땅, 바다, 공기, 심연, 지옥 이 모든 것이 곧 하느님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녀가 예수를 출산한 후에도 처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그가 선량한 사람이거나 선량한 이의 아들이라고 했다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생각에 집착하여 많은 사람과 논쟁을 벌이는 메노키오를 주교의 대리인 친구와 지인들이 조심할 것을 경고한다. 그러나 1584년 첫 번째 종교재판을 받게 된다.
교황청까지 알려진 독창적인 천지창조설을 그는 재판 과정에서 설명한다.
흙,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자체이고 이 모든 것은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고,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들입니다. - 그의 종교 관념은 황당한 망상이라고 치부하였고, 구더기를 천사라고 말하는 메노키오를 옹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동·식물의 순환 과정을 깊숙이 내려다보면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해당하는 미생물, 플랑크톤, 지렁이 같은 생물은 인간에게 ‘천사, 역할이다. 맨눈으로 관찰되지 않는, 생명체의 순환고리를 알 수 없었던 16세기,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신의 창조물로 알았을 것이다. 우리가 유전의 변이를 알지 못했던 시대에. 개, 양배추, 장미 등 다양한 동· 동물들이 각 개체로서 신의 창조로 빚어낸 위대한 탄생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메노키오의 재판은 그가 “미쳤거나, 귀신에게 홀렸다”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메노키오의 종교적 우주관은 어떤 계기로 형성되고 자신의 종교관을 확립할 수 있었을까?
16세기 글자를 읽고, 쓰는 행위는 지배층의 전유물이었고, 천지창조의 절대적인 ’신‘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하층민의 억압 수단이었다. 메노키오는 글을 겨우 읽고 쓸 수가 있는 수준이었다. 우리 부모 세대(80세)가 그러하듯 16세기 서양 문화권도 글을 읽고 쓰는 것은 하층민과 거리가 멀었다.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는 약간의 금지된 서적과 성서의 약술기, 최후 심판의 역사, 맨더빌의 기사, 잠 폴로- 카라비아의 꿈, 연대기, 데카메론 등을 빌려서 읽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정립했다.
이러한 행위는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생각과 사회적 현상을 비판하고 삶의 형태를 바꾸고 싶었던 메노키오의 신념이었다. 16세기 농부 메노키오의 사회의식이 책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최후의 심판일에 대해 메노키오는 『모든 성인 전기의 전설, 성서의 약술기』을 이용한다.
“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사악하여 나를 위해 한 번도 선한 일을 행하지 않았다. 이 말에 천사가 대답하기를 주님이시여, 당신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기에 선한 일을 하지 못하였나이다. ‘하느님 말씀이 내가 굶주렸으나 너는 나를 먹이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으나 너는 내게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으나 너는 나를 입히지 않았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도 너는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저는 주님이 바로 저 불쌍한 이웃이라고 믿었습니다. 주님이 바로 내가 그 거지였다고 하셨기에.”
종교는 실천적이고 효과적이어야 하며, 이웃에 대한 의무는 하느님에 대한 의무와 병행되어야 한다는 메노키오의 생각이다. 무조건적인 신에 대한 찬양보다, 삶 속에서 찾는 신앙의 형태여야 한다고 말했다.
메노키오는 『데카메론』의 세 개의 반지에 대한 전설을 읽고 감명받아 심문 과정에 이렇게 말한다.
“옛날 위대한 군주가 자신의 귀중한 반지를 갖게 되는 사람이 자신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왕은 자신의 반지로 똑같은 다른 두 개의 반지를 만들어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신이 왕위계승자의 진짜 반지를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지는 너무 비슷하여 진짜를 구별하므로 불가능했습니다.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아버지 하느님은 기독교인, 터키인, 그리고 유대인과 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자녀를 거느리셨고, 그들 각자에게 자신의 계율에 의해 살도록 하셔서 우리는 어떤 그것이 옳은 것인지 모릅니다. 저는 기독교인으로 태어났고 그래서 기독교인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만약 제가 터키인으로 태어났다면 터키인으로 남기를 원했을 겁니다.”
메노키오는 자신의 신앙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이며, 하느님의 전치 창조가 다른 나라와 똑같이 적용되지 않으며, 신앙과 믿음이 다 다르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상에서 더 나아가, 메노키오는『성서 약술기』 인용하여 영혼과 영과 마음을 구분하여 말한다.
영혼이 육신에 생명을 불어넣어 실체로 의지를 불어넣을 때- 마음/ 영혼과 육신이 호흡할 때 – 영/영혼은 무엇을 상상하고 기억한다. 영혼은 생명이고, 영은 하느님에게 돌아가고 생명은 흙으로 돌아가고 주님이 부활시키는 날까지 잠들어 있다. 죽은 자의 무덤 외에 그 어떤 지옥도 존재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원죄를 단호하게 부인했다. 그렇다고 그가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1599년 7월 배교자가 된 메노키오는 심한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었다.
메노키오의 종교관은 16세기 교회의 권력과 부패에 대한 저항이었고, 그는 더욱더 진보된 새로운 세계를 갈망했다.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가 종교재판에 부쳐져 사형을 당하는 사건은 역사 차원에서 아주 미미한 개인의 죽음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을 우주에 놓고 보았을 때, 세상은 결코 위대한 우상만이 만드는 게 아니다. 평범한 그 누군가의 작은 외침, 외침으로 세계는 더 진보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16세기로 들어가 그 시대의 인물을 만나고 그 시대의 생활과 종교, 사회를 21세기 나와 만나 시대적 배경을 뛰어넘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미시사 : 아주 작은 대상—한 사람, 한 마을, 한 사건, 재판 기록 같은—을, 깊게 파고들어서 그 시대의 사회 전체를 읽어내는 방식.
겨울 냉기가 코 끝까지 닿는 밤 :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