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섬. 아름다운 사람. 부끄러움
세인트 헬레나
결혼하고 오랫동안 아파트 생활을 했다.
아파트는 비슷비슷한 구조의 살림살이, 경제와 생활반경까지 서로 비슷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살게 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엄마들, 학원, 빵집, 약국, 과일가게, 문구점, 헬스클럽, 도서관, 남편과 같은 직장에 근무 이웃 등,
생활권은 아파트단지로 한정되어 있으며, 전업주부들은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다.
큰아이 고3 무렵 아파트 생활이 지겹기도 하고, 아들이 서울로 가 대학 생활을 하게 된다면 경제적 부담도 고민되어 아파트를 떠나 상가가 딸린 주택을 사들여 이사를 왔다.
어느 날부터 마을 풍경 속에 내 눈으로 들어오는 한 사내가 있었다.
나이가 삼십은 넘어 선 것 같았으나 쉽게 추측할 수 없었고, 지능은 7∼8세 정도로 보였다. 이름도 모르는 그 사내는 말을 하지 못했다. 표현하는 말은 ‘어, 어’와 같은 단어로 표현했다. 옷차림이 초라한 사내는 늘 소리 없이 웃으며 해맑은 얼굴로 마을 어귀를 서성이고 지나다녔다. 근처 중학생들의 놀림이 되어 엉엉 울기도 했지만, 그 누구 하나 그 사내에게 말을 걸어주거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 사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고 있지만 사람 사이에 떠 있는 외로운 섬 같았다.
어느 날 해 질 무렵 시내(중심가)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데, 멀리까지 나온 사내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정차한 차 안의 나를 발견하고 “어, 어” 손짓하며 웃었다.
반가운 웃음이 나에게 보내는 것인 줄 몰랐던 나는 붐비는 차 안을 둘러보았다. 나를 향한 웃음인 줄 알고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웠고 사내의 반가워하는 얼굴을 보면서도 무표정으로 대응하려는 순간 버스가 출발하여 안도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날도 헬스클럽을 가기 위해 경찰서 앞을 지나고 있었다.
20m 앞서 사내가 걸어가고, 반대편에 한 쌍의 연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날씬하고 예쁘고 굉장히 세련된 아가씨와 옆에 있는 남자 또한 키가 큰 편은 아니지만 남자다운 체격을 소유하고 있어 눈길이 갔다.
아가씨가 사내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했다. “어디 갔다 오냐? 밥은 먹었냐?, 옷이 이게 뭐야 추운데, 좋은 옷 입고 다녀야지.” 말을 건넸다.
사내는 그저 “어, 어”하며 웃기만 했다.
아가씨는 옷을 여며주며, 머리를 만져 주고 다음에 보자고 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같이 놀던 친구였거나 이웃처럼 보였다.
아가씨가 말을 걸어주는 내내 사내의 웃는 입은 더욱 커졌고, 헤어져 걸어가는 발걸음이 붕붕 떠가듯 경쾌하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가씨가 내 옆을 지나쳤다. 세련된 미모를 더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부끄러웠다.
사내가 늘 웃어주던 웃음을 한 번도 같이 웃어주지 못한 것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늘 웃어주던 그 사내에게 같이 웃고 말을 건넨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부터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마을 어귀에 있는 집이 비워졌으며, 우리 마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 한 것 같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편견의 틀을 깨는 일이 너무 힘든 것 같다.
그 사내의 웃음에 웃음으로 동질화되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텐데……. 마음에 가려진 가벼운 종이 한 장을 올리지 못할까?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부모 없이 자란 아이, 편모나 편부 밑에서 자란 아이, 가난한 집 아이, 또 아픈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살해당할 위험, 치명적인 상해, 학대, 버림받게 되는 일 등)되는 통계가 정상적인 가정과 건강한 아이보다 훨씬 높다. 진화적 심리까지 갈 학문적인 가설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미 이런 현상들이 일반적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이타성의 가치를 개인의 도덕성으로 실천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할 일이 아닌 것 같은 사회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공동체 문화가 허물어진 사회, 약자에게 냉혹하게 비정해져 버린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드는 주범은 잘못된 경쟁의식과 목적을 잃어버린 교육과 잘못 받아들인 자본주의 사회에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깊이 바라보는 철학적 시간이다.
그리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의 섬에 가 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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