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수필 쓰기

봄이 찾아오는 길목

세인트 헬레나 2017. 4. 30. 11:38

봄이 찾아오는 길목

                                                                                                           세인트 헬레나

노란 프리지어 꽃을 로컬푸드에서 사 왔다. 거실 가득 봄이 들어온다.

마당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 간 상연이 엄마는 날마다 꽃시장에 나가 꽃나무를 사들이고,

헬스클럽에서 만난 은하는 고등학교 아들 학부모 총회에 가서 선생님 면담을 하고 왔다고 한다.

학교 이야기 속에 신학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처럼 흥분이 묻어난다.

같이 운동하는 군자씨는 어제 차가운 봄바람 맞으며 쑥과 냉이를 캐 들판에서 냉이 샤부샤부를 해 먹고 그 국물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고 한다. 지금껏 먹어 본 라면 맛 중의 최고였다는 말에 꼴깍 침이 넘어가면서 봄맛이 느껴진다.

순자언니는 산수유, 매화꽃 활짝 피어난 섬진강변으로 꽃 나들이 가자고 한다.

온통 봄 이야기로 봄꽃으로 봄바람으로 봄소식을 전해 들으니 나도 설렌다.

갈 곳이 딱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예쁜 옷을 사야 할 것 같고, 겨우내 모자를 눌러쓴 머리도 손질해야 할 것 같고, 커튼과 이불, 두꺼운 오리털 점퍼도 세탁해야 할 것 같다. 이렇듯 일상의 생활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따뜻한 봄 햇볕이 좋아 입에서는 연신 어머 봄이 다 왔네!”라고 중얼거려진다.

봄이 온몸으로 느껴져 한껏 들뜬 마음을 살짝 방심하면 올해의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애달픈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와 같이 한 봄.

동구 밖 논두렁길을 따라 멀리 아른거리는 엄마는 윤곽만 보이고 노랗고 커다란 소나무동이(소나무 잎을 갈퀴로 모아 커다랗게 뭉쳐 만듦)만 둥둥 떠 오는 것 같았다

엄마!” 온 힘을 다해 엄마를 부르며 종종 거름으로 달려 엄마 앞으로 다가가지만 무거운 나무 무게로 짓눌린 얼굴이 창백한 엄마는 반가운 기색 없이 빨리 가자.”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소나무동이로 올라가 잡을손이 없었던 나는 다시 엄마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골목길로 들어서면 멍멍 짖던 백구가 꼬리를 흔들며 내려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간다. 거위도 꽥꽥거리며 날개를 활짝 펴고 달려와 긴 부리로 내 옷을 잡아당긴다.

마당 살구꽃은 하얗게 만개한 채 서산의 붉은 해를 안고 서 있고, 대나무 잎은 사스낙거리며 뾰쪽한 봄바람을 헤진 손매 사이로 들어 넣는다.

엄마는 마당 모퉁이에 소나무동이를 내려놓고, “에고- 죽겠다.” 긴 한숨을 내쉰다. 미간을 찡그린 채 마루에 걸터앉아 찬물을 한 대접 마시는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나무동이에 꽂혀 있는 진달래 분홍 꽃에 마음을 뺏겨버린 나는 부엌과 뒤꼍을 돌며 깨진 작은 항아리 찾아 진달래꽃을 꽂아 마루에 올려놓는다.

그제야 엄마의 눈이 진달래꽃과 나 사이를 오간다.

너는 꽃처럼 살아라.”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니 내 얼굴을 깊게 한참을 쳐다보신 후 소리 없이 웃으신다. 나무들이 빽빽한 음산한 산에서 소나무 잎을 갈퀴로 모으며 꺾었을 분홍 진달래꽃. 온갖 풀꽃과 들꽃을 좋아하는 철없는 어린 딸을 생각하였을 진달래꽃. 생동하는 봄이 왔는데- 홀로 한 삶의 짊에서 한순간 마음을 달래주었을 진달래꽃.

너는 꽃처럼 살아라.” 이 한마디 의미를 엄마 살아 계시는 동안 나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꽃처럼 살고 싶었으나 꽃처럼 살지 못한 고단했던 엄마의 삶을.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길 원하는 엄마의 마음을.

봄의 정령을 안고 온 진달래꽃을 보니 너는 꽃처럼 살아라.”라는 엄마의 말이 더욱 생각난다.

엄마 봄 왔네. 저 앞산 봐봐. 진달래꽃 보이지! 쑥 캐러 갈까? 엄마는 논두렁에서 캔 쑥보다 티끌이 많은 바구니 보시면서 에헤! 아직도 얘기구나.오십 중반을 넘어 선 나를 나무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