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삶은 동맹자이자 맹세한 공범자로 나의 편에 서서 나을 지지하고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지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보다 ‘어떻게 품위 있게 죽을 것인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반의반으로 줄어든 식욕과 겉과 다르게 육체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성인병이 하나둘 늘어난다. 짧아진 보폭, 깜박거리는 기억력, 잘 들리지 않는 청력, 돋보기를 쓰지 않고는 책을 읽을 수 없는 시력 등……. 노화는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생물학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규칙적인 변화로, 신체구조나 기능상의 변화뿐 아니라 인간의 적응이나 행동에서의 변화이다. 인간의 전 생애 발달단계 중 하나이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병’에 이른다.
몇 달 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한 등록증을 받았다. R로 시작된 국립연명의료 기관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등록 번호는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시간이 되면, 나를 대신 할 것이다. 마지막 스스로 결정이다. 순식간에 달려온 삶이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물처럼 흘러내린 것 같다.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 같은 욕망이 생의 유한성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젊은 시절 생의 길이를 재면서 살았더라면 더 잘 살았을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에프스끼는 페트라세프스끼(금요모임) 사건으로 사형집행 직전의 특사로 사형을 면하게 된다. “그는 목숨이 붙어 있는 시간이 5분 정도 주어졌을 때, 이 5분 동안 많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그게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동료들과 작별 2분, 자기를 성찰해 보는데 2분, 거미와 철장밖에 자라는 한 그루 나무에게 작별하는 데 나머지는 쓰기로 할당했다. 동료들과 작별을 고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2분이 찾아왔을 때 ‘나는 지금 존재하며 3분 후 다른 존재로 변할 것이다. 그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명을 다시 찾는다면……. 그것이 영원히 아닐까?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된다면- 그때 나는 매 순간 1세기로 연장해 아무것도 잃지 않고, 1분 1초 정확히 계산해 두어 결코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리라” 극적으로 감형처분을 받은 도스또예프스끼는 매 순간 정확히 계산하며 살았을까요? 너무나 많은 순간과 시간을 잃고 살았다고 ‘백치’에서 말하고 있다.
삶이란 죽음이 있기에 더 가치 있게 살아야 하지만, 살아내야 하는 현실에서는 망각하거나 혼돈하며, 낭비하고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철저한 죽음의 순간에 삶의 가치가 더 절실하듯이 죽음을 통한 삶의 의미를 배워야 한다. 질병과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나에게만은 오지 않은 일처럼 죽음을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 일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 주오, 에헤 에헤에에 너화 넘자 너화 너” 꽃상여가 나가던 날 마을의 모든 사람은 담벼락에 서서 옥자 엄마를 태운 상여가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마을 한복판에 내려앉으면,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아이고 불쌍한 사람” 눈물로 배웅을 한다. 한동안 옥자 엄마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했으며, 어린 시절 죽음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누구나의 물음표이지만 어쩌면 가장 단순한 질문일 수 있다. 즉 타인의 죽음 통해서 삶에 경외심을 가지고 충실하게 된다. 공동체 마을이 사라진 현대인은 어디에서 죽음을 배우고 있을까? 노인병원과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접하고, 죽음을 격리하고 터부시하고 있다. 늙음에서 노화에 이르는 죽음의 질병은 단순하게 인간을 죽게 하지 않는다. 가장 무서워하는 병든 육체와 고통의 시간을 살아야 하며,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내 의지대로 내 의식으로 내 삶을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네 글자 속에 ‘생’은 한 글자다. 100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노·병·사’ 길이는 무척 길어졌으며, 2023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8.5%이고 대한민국은 고령사회이며, 2070년 기대수명은 91세이다. 한국인 75%는 의료기관에서 사망한다. 노인들은 어떤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는가? ≪신체적, 정신적 고통 없는 죽음,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 죽는 순간 가족, 지인과 함께하는 것, 임종 전후 상황을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현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많은 노인은 체념하며, 두려워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려 노인병원으로 간다. 노인병원은 육체와 영혼이 가여운 시간이다. 특히 죽음의 영혼을 맞이하는 순간 임종실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인 병실에서 마지막 환자의 시간은 처절한 사투(死鬪)의 모습이다. 비좁은 병실에서 쪼그리고 앉거나 서서 마지막 인사를 하며, 바라봐야 하는 가족과 친지들은 고통을 줄여줄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에 부딪히며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영혼마저 얼어붙은 시간. 옆 병상에 누워 자신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먼저 체험하는 같은 병실의 혼자들은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모습이 현재 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죽음 문화 실상이다. 우리가 임종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눌 비율은 0.09%에 불과하며, 영화나 TV에서 보여주는 존엄한 작별인사권은 없다.
하여 지금이라도 죽음의 문화 바꾸려는 사회적 함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도스토옙스키는 페트라솁스키를 중심으로 작가 등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급진적 정치 모임에 참가하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절대 왕정의 입장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고골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불온문서로 간주하였던 벨린스키의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것이 원인이 되어, 1849년 4월 23일 5시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니콜라이 1세는 체포된 지식인들을 사형에 처할 생각은 없었으나, 당시 퍼지고 있던 급진주의 정치 모임들에 대해 경고하고자 직전에 특별 사면할 계획으로 사형을 선고하였다.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형 집행이 중지되고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되었다. 도스토옙스키도《백치》 등의 작품에 사형집행 직전의 심정을 묘사하였다. 이 사건은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위키백과-
2020년 노인실태조사
임종실을 설치·운영 중인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은 종합병원 81개소와 요양병원 7개소뿐이다
송천마을신문 10월 호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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