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
마빈해리스 세인트헬레나
힌두교 (거룩한 어머니의 암소와 인도)
인도 농부들이 굶주리면서도 암소를 잡아먹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암소는 모든 살아있는 것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 어머니인 것과 마찬가지로.
전문가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인도인들이 굶주리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암소 숭배의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암소도살 금기 때문에 아무쓸모 없는 8천만마리의 동물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농업능률을 저하시키고, 우유도, 고기도 공급하지 못하면서 인간들과 식량과 땅을 가지고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소숭배로 인하여 인간들이 서로 증오하고 싸우고, 죽이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교도인들은 돼지고기를 싫어하지만 소고기는 먹는다. 이로 인해 힌두교도들은 회교도들을 소 살해자라고 증오한다. 인도 대륙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누어지기 전에는 회교도들이 암소를 잡아먹는 것에 분노하여 유혈폭동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났다. 170개의 회교도 부락이 뿌리가 뽑힐 정도로 초토화된 1917년 비하르 폭동으로 인도와 파키스탄 관계는 악화되었다.
간디는 이 폭동에 대해 개탄했으며 ,암소숭배를 열렬히 찬성 했고, 전면적인 암소도살금지법을 재정했다. 인도헌법이 제정 되었을 때 암소를 살해하는 어떤 형태의 행위도 엄금한다는 “암소권리헌장”이 포함 되었다.
인도에 암소가 많지만 이에 배해 수소가 상대적으로 귀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에서는 수소와 물소가 논밭갈이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인도에는 6천만의 농가가 있는 쟁기끌이 가축은 8천만 마리에 밖에 없다. 각 농가당 두 마리의 수소나 물소가 필요할 경우 1억2천만마리의 쟁기끌이 가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농부에 이웃 농가에서 빌리거나 세내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어 부족현상은 심각하지 않는 것 같다.
가축을 공동사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쟁기는 우기와 때을 같이 해야만 하며, 한 농가가 쟁기질을 끝마쳤을 때는 쟁기질의 최적기를 지나 다른 농가도 쟁기질 할 시기를 잃을 경우도 있으며, 소는 우마차용으로도 필요하다. 모든 농촌의 교통수단은 주로 수소에 의존하고 있다.
병들고 상한 수소를 건강한 수소로 대체할 수 없는 인도 농부는 마치 고장난 트렉터를 대체하거나 수선할 능력이 없는 미국의 농부와 흡사한 처지가 된다.
암소를 소유한 농부는 수소를 생산해낼 공장을 갖은 셈이 된다. 암소를 숭배하든 안하든 이런 이유 때문에 암소를 도살장애 넘기지 못하는 타당한 논리가 성립된다.
암소에서 짜내는 우유는 가난한 인도 가정의 영양식으로 충당되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인도의 낙농제품은 주로 물소를 이용. 물소는 혹소 보다 수유기간이 길며 유지포함량도 더 많다.)
생태계속의 종교.
농업은 인간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시스템의 일부분이다.
미국의 농부들은 나귀나 말 대신 트랙터로 경작하기 시작한 때부터 비료로 인분을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를 사용해왔다.
인도농부들은 수학기술에 필수적인 농업용 기게, 자동차. 석유 및 화학비료, 살충제와 같은 산업복합체에 편입될수 없다. 그 이유는 소숭배 때문이 아니라 트랙터를 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값싼 동물들을 값비싼 기계들로 대체할 경우 발생하게 될 피치 못할 경과의 하나는 농업인구의 축소하고 소유농지를 대규모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에 대규모 기업농이 발달하자 소농가가 사실상 몰락하고 말았다. 현재 미국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하며 60퍼센트에 달했던 백년전 농업인구와 비교해보면 인도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길을 밟아 기업농이 발달하게 된다면 2억5천만에 달하는 실직농민들에게 직업과 주택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또 가축들은 고에너지 시스템에서 석유화학공업의 기능을 다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도의 암소는 매년 7억 톤의 분뇨를 배설한다. 이 배설량의 약 반 정도는 비료로 사용되고 나머지 대부분은 연로로 사용한다. 인도의 석유와 석탄 보유량이 극히 소량이고 사실상 석탄과 석유로 소똥을 대신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인도에서는 기이(물소젖 버터기름)라는 버터가 항상 식탁에 오르고 있다.
소똥을 태운 불꽃은 깨끗하고 장시간 서서히 타오르며 연기가 없어 음식이 그을리지 않는다.
소똥은 물에 개서 반죽을 만들어 마루에 까는 데 사용한다. 소의 분뇨를 발라 매끄럽게 굳히면 면지가 잘 흡수된다.
하층 카스트들은 거리를 방황하는 암소들이 배설한 소똥을 거두는 독점권이 부여되어 있다.
마르고 여윈 암소는 고리대금업자에 항거할 수 있는 최후의 방어 수단이 된다.
인도의 암소는 꼴이나 물을 거의 먹지 않고도 장기간 생명을 연명할 수 있다.
다른 품종들이 견뎌내기 힘든 열대풍토병에 굉장한 저항력이 있다.
힌두교도 농부들은 짐승을 도살하거나 팔아서 돈을 벌수가 있고, 농가의 식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으나 도살장에 소를 파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생태이론적 분석에서 정설이 되고 있는 이론은 공동체라는 유기적인 조직체는 평상의 조건들보다 오히려 극단의 조건들이 생길 때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되는 것이 보통이다.(인도의 몬순기후는 정기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순간적인 욕구와 장기적인 생존조건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 괴로운 갈등에서 연유된 것이다. 신성한 상징적 의미와 거룩한 교리를 갖추고 있는 암소숭배는 인도 농부들에게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게 해준다.
금기의 기원
2차대전 당시 벵갈에는 한발과 일본의 버마점령 때문에 대기근이 밀어 닥쳤다. 1944년 여름 가축들을 잡아먹는 사례가 경이적이 숫자로 나타나자 영국군대가 암소보호법을 발표하여 소의 도살을 금지할 정도였다.
그 당시 그 민족이 격고 있는 비참한 상황을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인도에서 쇠고기 통조림공장을 세우지 않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통조림공장을 세우게 되면 생태적 균형이 파괴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런 위험은 암소숭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열역학법칙에 의해 발생한다.(식물 플랭크톤-동물 플랭크톤-새,물고기-인간) 동물이 먹는 것의 칼로리 가치는 항상 그 자체 칼로리 가치보다 월씬 더 크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에서 쇠고기 소비량이 아주 많기 때문에 곡물의 3/4 가축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인도인들의 1인당 칼로리 흡수량은 이미 하루 소요 최한선을 밑돌고 있다. 곡물생산을 고기생산으로 바꿀 경우 식비값이 높아지고 가난한 가정의 생활수준은 더욱 낮아질 뿐이다. 인도내에 있는 모든 소의 수로는 쇠고기를 주식으로 할 수 있는 인구가 전국민의 10퍼센트나 충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도의 전역에서 최하층 카스트들이 죽은 암소를 처분한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 현재 인도에 있는 모든 도살장에서 공급되는 쇠고기는 힌두교도가 아닌 도시 중산층에 공급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암소숭배에도 불구하고 인도에는 대규모 가죽제품산업이 움직이고 있으며, 카스트들이 가죽제품을 생산할 가능성이 많다.
인도 소의 사료 가운데 식용작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20퍼센트도 못 미친다.
관습과 충돌
가난한 자들은 암소숭배를 죽은 고기를 가져다주는 제도로 여기지만 부자들은 암소숭배제도를 폐기하지고 주장한다.
암소주인들이 자기들의 소를 낮동안 돌아다니게 방치하며, 소 양로원이나 경찰서 공공유리등이 있기 때문에 도시에서 소를 잃는 위험은 극히 드물다.
힌두교의 암소숭배 관습은 저축과 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서양의 프로데스탄트 경제윤리 보다 탁월한 경제성을 보여주고 있다.
간디는 암소가 인도의 진정한 민족성을 고취하는 투쟁의 중심적 초점이 되고 있을 알았다. 암소숭배는 소규모의 농업경제와 어룰리는 풍습이며 물레와 잘 어울리는 관습이었다.
암소숭배는 간디가 그 대중들을 산업화로 인한 파멸에서 보호해주기 위한 투쟁방식의 하나였다.
모든 인간활동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사로잡는 신조나 교리가 이용될 필요도 있다. 모든 경제 시스템은 항상 그 시스템의 최적 효율점를 중심으로 위 아래로 진동하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인도인들은 극히 실용적인 국민이며 어느 것 하나도 낭비하지 않는 국민이다”라고 오덴탈 박사는 평하고 있다.
마빈해리스의 책은 늘 즐겨움과 인류문화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다준다.
인도의 늙은소을 불결하게 바라보던 문화적 충돌을 넘어 이 책은 거룩한 암소가 어떻게 종교가 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우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속에서 소와 공존하면 탄생된 힌두교라는 종교가 세삼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다음 편은 돼지 숭배와 혐오에 관한 글을 정리 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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