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광장을 읽고

세인트 헬레나 2018. 10. 21. 08:41

광장


       


                                                                                 출판사 : 문학과 지성사


                                                                                      지은이 : 최인훈

                                                                                                                 세인트 헬레나 

장기수 정순택 씨(84) 시신이 1958년 남파된 뒤 48년 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유족에게 시신과 유품을 인도했다. 아버지가 시신으로 돌아와 유감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TV에서 보았다. 국가가 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소설 같은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겨 지지 않는다. 이런, 뉴스를 접한 날이면 광장에서 서성이는 이명준최인훈 책: 광장의 주인공을 본다.

최인훈 소설 광장은 1950년대 사회체제와 개인의 신념과 사상을 다루고 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허우적거릴 때 정치적 논리로 국가를 앞세워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친 포로 이명준에게 남한과 북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이명준이 철학과에 다니는 이유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다. 명준은 대학 수업 시간에 계몽의 변증법(Dialektik)을 들으면서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보람 있는 일이라고 도깨비와 흥정해도 좋다고 속삭임에 넘어가 무서운 도깨비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 텅 빈 광장으로 시민을 모으는 나팔수가 되어 달라는 정 선생 말에 흔들리는 자신을 허전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몸부림 때문이라고 다독인다.

 

명준에게 비친 남한정치의 광장은 미군 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깡통을 골라 양철을 만들고, 목재를 가려내서 문화주택을 만들고, 음식 찌꺼기로 목축을 하고, 정치의 밀실은 밀수입과 암거래와 보스들과 결탁을 한다. 한국 정치가들은 광장에 도끼와 삽을 가지고 나오지만, 눈에 마스크를 가리고 도둑질하러 나온다. 한 줌의 쌀과 한 포기 시래기를 사기 위한 경제의 광장엔 도둑 물건이 넘치고 있다. 그 돈으로 산 핸드백의 무게는 명성을 말하고, 국고를 덜컥한 정치인의 딸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좋은 아버지 밀실은 풍요로 넘쳐나고 남한의 광장은 비어 있다.

 

8.15 그해 북으로 간 아버지가 민주주의 민족 통일전선 대남방송에 나온다는 북한의 광장은 다른 동네다. 그 사이에는 기관총이 걸려 있다. 명준는 사찰과 취조실에서 온통 피투성이가 된 셔츠를 보면서 멀리 있던 아버지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동시에 자기의 삶이 허물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혼돈과 대립 속에 전쟁의 책임과 증오가 필요할 때 대남방송에 나온다는 아버지를 가진 명준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절박하게 두려움을 없애버려야 할 시간에 윤애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 속에 그랬으면 하는 헛된 바람과 헛믿음이다. 명준과 윤애의 사랑 속에는 철학이라는 가난한 방이 있을 뿐 믿음이 없었다.

 

밀입국한 북한은 잿빛 공화국이다. 당에서 시킨 강연을 하면서 만난 시민은 혁명 공화국에 사는 열기 띤 얼굴이 아니었다. 북한의 광장은 코뮤니스트의 신명이 아니라 신명 난 흉내를 냈고, 믿음이 아니고 소문을 믿었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인민의 가슴에서 끓는 피를 그 붉은 피를 원하지 않았다. 혁명을 팔고 이상과 현실을 바꾸면서, 혁명과 인민의 탈을 쓰고 부르주아처럼 어린 의붓어머니와 사는 아버지. 북한의 광장과 밀실에 인민의 삶은 없었다.

 

19508월 공산군이 들어 온 서울 S 경찰서, 카바레에서 색소폰을 불고 책 읽기를 싫어하고 여자를 쫓아다니던 영미 오빠 태식을 만났다. 자신의 첫사랑 윤애와 결혼한 태식은 부잣집 아들다운 너그러움을 지녔지만 사무친 이야기엔 밥맛없어 했다. 자동차 이름과 카메라 이야기와 미국 유치원생보다 못한 영어를 하면서 새로운 삶의 틀을 옮기는 선구자처럼 살던 태식이다. ‘값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행동할 수 있다말하는 태식을 고문하는 일에서도 명준는 회의를 느끼고 지고 말았다.

 

낙동강 싸움터. 멀리서 울리는 포격 소리를 들으면서 전쟁 주는 몸을 짓밟는 악한 기운이 단지 바른 사회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믿으려 했다. ‘역사를 앞지르고 싶었던 움직임은 느린 걸음걸이로 전쟁에 졌다. 전쟁 속에서 피어날 것 같은 그리스도교의 경제학과 스탈리니즘의 이상주의의 나라는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실존하지 않았다. 하느님이 다시 온다는 말이 2천 년 동안 미루어져 온 것처럼 공산 낙원의 재현은 30년 동안 미루어졌다.

 

지금 다시 골라잡으라면 그래도 중립국으로 가겠나? 물음 앞에 명준는 자기를 위해 마련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 3국 거기엔 아무도 없다. 뿌리를 내리고 맺어질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회, 믿음을 잃어버린 사회에 서는 것이 명준는 두려웠다. 인민의 예술꾼 은혜가 간호병이 되어 나타났을 때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뼘의 광장과 한 사람의 벗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어미갈매기와 아빠갈매기가 되어 새끼갈매기 함께 날고 싶었다. 중립국으로 가는 타고르호에 흰 바닷새들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던 날 그는 푸른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19506.25 전쟁 이후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남한의 광장은 늘 뜨거웠고, 북한의 광장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붉은 부대로 뜨거웠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의 광장은 회색빛이었다. 남한과 북한의 밀실 아래서는 좌익. 반미. 친미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이 이념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북한의 마르크시즘은 배고픔만 남았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뜨거웠던 광주사태를 지나 88서울올림픽을 지나서 2002 월드컵광장을 지나는 동안 북한 평양의 김일성광장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장착되어 갔다. 그럴 때마다 먼 시선으로 광장을 바라보고 있는 명준을 보았다.

 

2018427일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과 북을 오가는 두 정상의 모습은 전 세계의 시선과 온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회담 결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다. 분단된 국가, 휴전국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고 있는가? 명준는 광장에서 파란 하늘 가까이 닿을 듯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웃고 있다.

 

남한에서 중립국을 택한 88명은 태평양 건너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캐나다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일찍이 나의 조국이 동방의 등불이 되길 원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소망했을 것이다. 명준이었던 그들이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동방의 등불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타고르의 시처럼 빛나던 한반도 다시 하나가 되어 아시아의 밝은 빛이 되는 날이 올 것인가! 평화가 오는 그날. 뜨거운 그 날을 느껴보고 싶다.

 

저자 최인훈의 광장은 전쟁세대가 아닌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다. 광장에서 명준이 무엇을 고민했고, 무엇을 사랑했으며, 어떻게 살길 원했는지 아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기도 하고, 한사람이 살아내야 하는 지표를 만드는 시발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글마음조각학교

                                         『너나답다

                                                      문화예술 전문잡지

           

                                                                       


                                                        

                                                         2018년 8월 새싹호 축하드립니다.